‘세금은 결국 중산층이 다 낸다’는 말, 정말일까?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세금 부담은 종종 ‘불공정’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의 조세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 체감과 실질 구조 사이에는 다소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직접세와 간접세의 구성 비중, 소득 구간별 실질 세부담률, 그리고 감면과 공제 제도의 구조적 특성을 분석하면, 이 논쟁의 본질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1. 조세 구조의 기본 프레임: 직접세와 간접세의 불균형
우리나라 조세 체계는 크게 직접세와 간접세로 나뉜다. 직접세는 소득이나 자산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세금이며 대표적으로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등이 있다. 반면, 간접세는 소비 행위를 기준으로 부과되는 세금으로, 부가가치세(VAT), 개별소비세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두 세금의 비중에서 발생한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간접세의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다. 2023년 기준, 국세 수입 중 부가가치세의 비중은 약 30%에 달하는데, 이는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지출액이 낮아도 소득 대비 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즉, 간접세는 형식상 ‘누구나 동일하게 부담하는’ 세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득이 낮을수록 상대적으로 더 높은 세부담률을 의미한다. 이는 대표적인 역진적 조세 구조로, 조세 형평성에 있어 핵심적인 이슈다. 이와 달리 소득세는 누진 구조를 갖고 있어 고소득층이 더 많이 부담하도록 설계돼 있지만, 다양한 공제 및 감면 항목을 통해 실제 납부액은 기대보다 적어지는 경우가 많다.
2. 소득 계층별 세부담률: 왜 중산층이 더 부담한다고 느낄까?
국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의 고소득자가 전체 소득세의 80% 이상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수치는 표면적으로 고소득층이 가장 많은 부담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득세 외에도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은 다양하다. 건강보험료, 지방세, 자동차세, 교육세 등 비중은 낮지만 체감에는 크게 작용하는 항목들이 많다.
중산층이 느끼는 '세금 부담감'은 총세부담률 외에도 다음 요인에서 기인한다:
- 감면의 사각지대: 중산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세무 조정이나 절세 수단이 부족하고, 저소득층에 비해 감면 혜택이 적다.
- 현금 흐름의 압박: 대출, 교육비, 의료비 등 실제 가처분 소득이 빠듯한 중산층은 같은 세금이라도 더 무겁게 체감한다.
- 연동된 비용 증가: 각종 공공요금, 건강보험료, 연금 납입액 등이 수입과 연동되어 높아질 경우,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중산층만 세금을 낸다'는 인식은 세율의 절대값보다는 세금이 가처분 소득에 미치는 상대적 영향, 그리고 심리적 부담이 결합된 체감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 감면 제도와 세금 착시: 조세 정의의 이면
우리나라의 조세 시스템은 다양한 감면 및 공제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근로소득공제, 자녀세액공제, 연금저축 세액공제, 특별세액공제 등은 소득세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지만, 이 제도들은 실질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자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소득자는 연금저축에 더 많은 금액을 납입할 여력이 있어 더 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저소득층은 기본적인 생활비 충당도 어려운 상황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리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기부금 공제 등도 '여윳돈'이 있는 계층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셈이다.
이처럼 제도 설계 자체가 고소득층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면서, 형식적으로는 ‘고소득층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더라도, 실제 세부담 체감은 큰 괴리를 보이게 된다. 이는 조세 정책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세금에 대한 심리적 저항도 커지게 된다.
조세 정의는 단순한 세율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걷고, 누구에게 혜택을 주며, 어디에 쓰이는가의 문제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중산층의 세금 피로감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세율 인하보다는 감면 제도의 재설계, 간접세 구조의 조정, 조세지출의 투명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마무리: 진짜 부담은 어디에 있는가?
'중산층이 세금을 다 낸다'는 말은 사실과 감정이 절묘하게 뒤섞인 인식이다. 통계적으로는 고소득층이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볼 수 있지만, 체감 부담은 중산층이 가장 크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조세 제도의 설계, 감면 정책의 적용 방식, 그리고 실질 가처분 소득에 기반한 체감 차이에서 비롯된다.
조세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증세 혹은 감세 논쟁이 아니라, 조세 구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세율 조정이 아닌,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세금 사용과 조세 감면의 형평성 확보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