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성장하는데, 왜 중소기업은 계속 어렵다고 할까?”
한국 경제는 대기업 중심 구조로 오랫동안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생산성과 경쟁력의 왜곡, 특히 중소기업 생태계의 취약성과 연계되어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전체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구조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구조적 영향을 경제 전반에 미치며, 특히 고용과 기술혁신, 거래 구조, 낙수효과에 대한 오해와 현실 간의 간극을 보여줍니다.
1.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전략: 낙수효과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
한국은 1960~70년대 고도 성장기부터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 정책을 통해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견인해왔습니다. ‘수출 주도 산업화’라는 구호 아래 조선, 자동차, 전자, 철강 등 대기업 중심 산업군이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이는 전체 GDP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일정 부분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이후 수십 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오히려 더욱 심화됐습니다.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과 개인, 지역 경제로 이어진다는 가정 위에 작동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대기업의 매출은 증가해도 그 부가가치가 중소기업으로 제대로 이전되지 않았습니다. 원청-하청 구조에서 중소기업은 가격 결정권이 없고, ‘을’의 위치에 머물며 저임금, 저생산성 구조에 고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확인되는데, 2022년 기준 중소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3% 수준으로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또한 기술 유출 및 불공정 거래 관행은 중소기업의 혁신 인센티브를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입니다. 낙수효과가 작동하기 위해선 공정한 거래와 기술 공유, 공동 성장 생태계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한국의 기업 구조는 그 반대의 사례를 보이고 있습니다.
2. 생산성의 이중 구조: 왜 대기업만 ‘생산성이 높은’가?
OECD에 따르면,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생산성 격차가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입니다. 대기업의 생산성은 OECD 평균보다 높지만,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평균 이하입니다. 이 간극은 단순히 기술이나 설비의 차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시장 접근성, 금융 자본, 우수 인재 채용력, 수직 계열화에 따른 안정적 수주 등 다양한 인프라 격차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R&D 투자의 집중도 역시 문제입니다. 2021년 한국 전체 R&D 투자 중 77% 이상이 대기업에 집중돼 있으며, 중소기업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거나 자체 여력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은 시간과 인적 자원이 필요한 장기적 프로젝트지만, 중소기업은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산성 격차는 단순한 기업 규모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가 대기업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어렵고, 저부가가치 노동집약형 산업에 머무르게 되며, 결과적으로 전체 경제의 생산성 구조가 왜곡되는 것입니다.
3. 중소기업 생태계의 고립과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 문제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지만, 자본과 정책적 지원에서는 소외되어 있습니다. 이는 청년 취업난, 지역경제 침체, 산업 다양성 부족 등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특히 대기업이 외주화와 아웃소싱을 확대하면서 중소기업은 단가 경쟁과 구조적 저임금에 내몰리고, 결과적으로 우수 인력이 중소기업을 기피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정부는 ‘상생협력법’, ‘동반성장지수’, ‘중소기업 기술 보호제도’ 등을 도입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강제력이 약하고, 대기업의 자발적인 협력 없이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단순한 하청 역할을 넘어 독립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로 개편돼야 합니다. 중간재·부품 소재 산업의 경쟁력 강화, 기술기반 스타트업 지원, 지역 기반 산업 육성 등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또한 대기업 중심의 인재 흡수 구조를 분산시키는 정책, 예컨대 중소기업 취업 시 학자금 탕감, 세제 혜택, 안정된 주거 지원 등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 생태계 차원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한국의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는 단기적인 성장을 이끌었지만, 중소기업과의 격차, 생산성 왜곡, 고용 구조의 불균형 등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성장률’이라는 숫자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질적 성장’과 ‘경제 생태계의 다양성’이라는 방향으로 시각을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대기업의 이익이 곧 국민 경제의 이익으로 직결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생산성과 성장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고, 실질적인 ‘상생 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